마리오 에찬디 히메네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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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리오 에찬디 히메네스
마리오 호세 에찬디 히메네스 Mario José Echandi Jiménez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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코스타리카의 제33대 대통령 | |
임기 | 1958년 5월 8일~1962년 5월 8일 |
부통령 | 아벨라르도 보니야 발다레스, 호세 호아킨 페랄타 에스키벨 |
전임: 호세 마리아 피게레스 페레르(제32대) 후임: 프란시스코 오를리치(제34대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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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상정보 | |
출생일 | 1915년 6월 17일 |
출생지 | 코스타리카, 산호세 |
사망일 | 2011년 7월 30일 | (96세)
사망지 | 코스타리카, 산호세 |
정당 | 민족연합당→통일국민당 |
배우자 | 올가 데 베네딕티스 안토네이 |
서명 |
마리오 에찬디 히메네스(스페인어: Mario Echandi Jiménez, 1915년 6월 17일 ~ 2011년 7월 30일)는 코스타리카의 정치인, 외교관이다. 1958년부터 1962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직했다.
외교관
[편집]에찬디의 원래 직업은 외교관이었다. 대통령이 되기 전, 그는 미국 대사로 일했으며, 호세 마리아 피게레스 페레르의 두 번째 임기(1953-1958)하에서 하원의원을 지냈다.[1]
대통령
[편집]1958년 민족연합당의 일원으로 대선에 출마하였으며, 민족해방당의 프란시스코 오를리치(Francisco Orlich)와 무소속 호르헤 로시(Jorge Rossi)를 물리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.[1] 재임 중, 그는 레이 데 아기날도(Ley de Aguinaldo)라는 법을 통과시켰다. 이 법은, 노동자들에게 연봉을 주는 것이다. 첫 번째 국가 계획은, 운송시설의 확대와 고속도로 건설이었다.
민족의 화합
[편집]그는 또한 망명자들의 귀국을 허용하였다. 일례로 라파엘 앙헬 칼데론 과르디아가 있다.
퇴임 후
[편집]1970년 대선과 1982년 대선에 다시 도전했으나 각각 호세 마리아 피게레스 페레르,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에게 패하였다.
죽음
[편집]말년에 그는 심장마비를 앓고 있었고, 그는 이를 극복하였으나, 2011년 진폐증으로 사망하였다.
각주
[편집]- ↑ 가 나 Asamblea Legislativa de la República de Costa Rica. “Expresidente de Costa Rica: Mario Echandi Jiménez”. 2011년 8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. 2012년 8월 11일에 확인함.
외부 링크
[편집]- 위키미디어 공용에 마리오 에찬디 히메네스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.